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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

‘길이’는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의 거리다. 그렇지만 그리 단순하지는 않다. ‘낮과 밤의 길이’에서처럼 ‘시간’을 나타낼 때도 있고, ‘글의 길이’에서처럼 ‘분량’을 가리킬 때도 있다. ‘강폭’은 “강을 가로질러 잰 길이”인데, 이때 ‘길이’는 ‘면적’도 아우른다. 상황이 달라질 때마다 ‘길이’는 더 섬세하게 의미가 갈라진다.   ‘느리다’ ‘늘이다’ ‘늘리다’는 이런 ‘길이’와 연관돼 있다. 길이가 어떻게 쓰이느냐에 따라 뜻이 구분된다. ‘느리다’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동작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다”다. 단순히 시간의 길이가 길다는 걸 뜻한다. ‘늘이다’ ‘늘리다’와 명백하고 뚜렷하게 차이가 나서 이 말들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렇지만 ‘늘이다’와 ‘늘리다’는 경계가 분명하지 않을 때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을 기준으로 한다면 경계가 선명해 보이지만, 이 기준을 따르기에는 무리가 있다. 이 사전은 표면적인 ‘길이’와 관련된 상황에선 무조건 ‘늘이다’를 쓰라고 안내한다. 그래서 “바지 길이를 늘이다”가 된다 ‘늘리다’는 ‘넓이’ ‘부피’ ‘분량’ 등과 관계될 때만 쓰라고 한다. ‘늘리다’는 ‘길이’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규모를 늘리다” “학생 수를 늘리다” 같은 때만 ‘늘리다’가 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앞에서 밝혔듯이 ‘길이’는 단순하지 않다. ‘길이’는 면적이나 분량 같은 것들도 수반한다. ‘늘리다’도 ‘길이’와 관계가 있는 것이다. “바지 길이를 늘이다”는 면적이 늘어나는 걸 의미한다. 따라서 “바지 길이를 늘리다”가 더 적절하다. ‘훈민정음 국어사전’도 그렇다고 설명한다.우리말 바루기 바지 길이 훈민정음 국어사전 사전적 의미

2024-12-18

[우리말 바루기] ‘운명’을 달리하다?

죽음 앞에선 누구나 엄숙하다. 종교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불교계에선 승려가 죽었을 때 ‘입적(入寂)’이라 한다. ‘고요한 상태로 들어간다’는 뜻. ‘번뇌나 고뇌가 없어진 상태’를 가리키는 ‘열반(涅槃)’이라고도 한다. 개신교에선 ‘하늘의 부름을 받아 돌아간다’는 뜻으로 ‘소천(召天)’이란 표현을 쓴다. 가톨릭에선 ‘큰 죄가 없는 상태에서 죽는 일’이란 의미로 ‘선종(善終)’이라 한다. 천도교에선 ‘근본으로 돌아간다’는 뜻에서 ‘환원(還元)’이라 부른다.     언론 매체의 부음 기사에서는 ‘사망’ 외에 ‘별세(別世)’ ‘타계(他界)’ ‘서거(逝去)’ 같은 말들이 흔히 보인다. 이 가운데 ‘사망’을 빼면 다 죽음을 높인다. ‘별세’의 사전적 의미는 “윗사람이 세상을 떠남”이다. ‘타계’는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서거’는 “죽어서 세상을 떠남”이란 말이지만, 대통령처럼 지위가 높은 사람에게만 쓴다. 언론 매체는 마음대로 이 말들에 서열을 정해 놓았다. 사망, 별세, 타계, 서거 순으로 높아진다.   일상에서는‘숨지다’ ‘돌아가시다’ ‘작고(作故)하다(고인이 되다)’ ‘영면(永眠)하다(영원히 잠든다)’라고 한다. ‘운명(殞命)하다’도 ‘목숨이 끊어지다’라는 말이다. 그러니 ‘운명을 달리하다’는 어색하다. ‘달리하다’는 ‘유명(幽明)’과 어울린다. ‘유명’은 저승과 이승을 가리킨다.우리말 바루기 운명 사망 별세 언론 매체 사전적 의미

2024-11-07

[아름다운 우리말] 증 이야기

‘증(症)’이라는 말이 붙으면 병과 관련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정확하게는 병이라기보다는 병을 앓을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상태나 모양 등을 나타냅니다.(표준국어대사전) 그러니까 병이 아니어도 증이 붙을 수도 있고, 병의 증세니까 병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울증이나 어지럼증도 그런 단어일 겁니다. 우울증이나 어지럼증은 여러 병의 증세이기도 하고 그 자체로도 병인 느낌이 있습니다. 사실은 매우 심각한 병일 수도 있는 증세입니다.   한편 ‘의처증(疑妻症)’이나 ‘의부증(疑夫症)’ 같은 요사스런 증세도 있습니다. 이상하고 위험한 증세입니다. 걸핏하면 화를 내는 ‘화증(火症)’도 생각해 보면 병입니다. 그래서 ‘화병(火炳)’이라고도 했을 겁니다. 화병은 한자의 의미에서도 알 수 있듯이 몸과 마음속에서 불이 나는 겁니다. 비슷한 증세로는 짜증도 있습니다. 짜증은 늘 일어나는 증세는 아니지만 짜증이 일어나는 순간 어느 병보다도 전염성이 강합니다. 무서운 병이지요.   저는 짜증의 어원을 ‘짜다’에서 온 걸로 봅니다. 자신을 쥐어짜는 병이고, 마음속에 남의 자리를 없애는 병입니다. 짜증은 얼굴에도 나타납니다. 얼굴을 쥐어짜면 인상을 쓰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짜증은 치유가 가능합니다. 얼굴을 그저 펴면 됩니다. 짜증이 날 때마다 살짝 웃어보는 것은 치료의 명약입니다. 실제로는 그렇게 웃음 띤 내 모습을 보고 다른 사람도 얼굴이 펴집니다. 전염이 사라지는 겁니다.   짜증처럼 용언의 어간에 증이 붙는 구성의 어휘로는 ‘싫증’이 있습니다. 싫증은 사전에서 ‘싫은 생각이나 느낌 또는 그런 반응’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염증(厭症)’이라는 한자어의 고유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염증의 염은 싫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싫증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왠지 부족한 느낌입니다. 싫증은 처음부터 싫었던 것이 아닙니다. 오래 갖고 있어서, 자주 보아서 생긴 감정입니다. 신물이 난다고도 하고 식상하다고도 표현할 수 있는 말입니다.     싫증 역시 치유가 가능한 병입니다. 잠깐 거리를 두거나 새로움을 찾으려 노력을 하다 보면 싫증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오히려 싫증이 익숙함과 편안함으로 재탄생합니다. 익숙함과 편안함은 싫증의 다른 모습입니다. 짜증도 사실은 마찬가지입니다. 원래는 귀했던 것인데 귀함을 잊어버리면 짜증이 나는 겁니다. 그럴 때 쓰는 말이 ‘귀찮다’입니다. 귀찮다는 ‘귀하지 않다’가 줄어든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까이 와도 귀찮아서 밀어내게 됩니다. 말에도 가시가 돋습니다. 싫증과 짜증은 하루라도 빨리 치유해야 하는 증세입니다.   수많은 증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희망이 되는 증도 있습니다. 바로 제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병이라고 이름 붙인 ‘궁금증’입니다. 이런 병이라면 앓아도 될 듯합니다. 인류의 발전은 궁금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한자어로는 호기심이라고 하죠. 호기심은 기이하고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마음입니다. 달리 표현하자면 ‘나와 다른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알고 싶은 마음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눈이 반짝입니다.   궁금증은 아는 게 많을수록 커지는 병입니다. 병이 자라납니다. 병이 깊어질수록 배움의 깊이와 넓이도 달라집니다. 증세가 자라나서 기쁜 병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오늘의 ‘증 이야기’ 역시 궁금증에서 비롯되었을 겁니다. 한참 동안 증과 병의 차이점을 생각하다가 생각이 꼬리를 문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현용 / 경희대학교 교수아름다운 우리말 이야기 싫증과 짜증 사전적 의미 병인 느낌

2023-01-01

[시로 읽는 삶] 어휘의 의미 확장

슬픈 시를 쓰려고 배고프다, 썼는데 배곺으다라 써졌다/ 곺 뒤에 커서를 놓고 백스페이스키를 누르자 정말 배가 고팠다// (…) 그래, 슬픔은 늘 고프지/ 어딘가가 고파지면 소리 내어 울자, 종이 위에 옮겼다// 세면대 위에 틀니를 내려놓듯 덜컥, 울음 한마디 내려놓고 왔습니다// 그뿐인가 했더니/ 옆구리 어디쯤에 쭈그리고 있던 마음, 굴절되어 있네요   -이선락 시인의 ‘반려울음’ 부분       반려(伴侶)의 사전적 의미는 ‘짝이 되는 동무’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동고동락하는 사이로 인생을 함께하는 배우자를 반려자라고 하듯이 마음을 나누고 의지하는 관계에서 쓰인다.     요즈음 반려동물, 반려식물이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반려동물은 사람이 정서적으로 의지하며 가까이 두고 기르는 동물인 개, 고양이, 새 따위를 일컫는다.     애완동물이라는 말 대신 언젠가부터 반려동물이라는 말이 빈도 높게 쓰인다. 개나 고양이를 가족의 일환으로 보는 까닭이기도 하고 애완동물에서 ‘완’이 완구처럼 유희의 대상 같은 뉘앙스를 갖는다며 대체 용어로 쓰이기 시작했다.   반려식물은 집안에서 키우는 식물을 아우르는 말일 것이다. 지인 한 분은 다육식물인 다육이를 키우고 있다. 다육이는 건조한 기후에 적응하기 위해 잎이나 줄기 혹은 뿌리에 물을 저장하는 구조를 지니고 있는 선인장과의 식물이다. 실내에서 기르기가 비교적 용이하다.   팬데믹으로 집 안에서의 생활이 늘어나는 요즘 다육이를 키우는 일은 적적함을 달래주기도 하고 무료함을 해소할 수 있어 정서의 안정을 준다고 한다. 식물도 말을 알아듣는다고 믿는 그는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말을 걸기도 한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많은 사람은 개나 고양이는 배반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람을 가까이 하다 보면 이런저런 연유로 상처를 받곤 하는데 개나 고양이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으로 결코 주인을 섭섭하게 하지 않고 의리를 지킨다는 것이다.     가까이에 두고 기르는 동물이나 식물에 반려라는 명사를 앞세워 우대하게 이른 것은 동·식물의 가치적 이해가 달라진 것도 있겠고 생명 있는 것들은 모두 동일하다는 인식변화의 결과인 듯하다.    현대인들이 동물이나 식물을 키우는 행위 자체보다 더 크게 의미를 확장하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인간의 고독과 외로움을 상징적으로 보이는 것 아닌가 싶다. 사람 사이의 단절이 늘어나는 우환이 잦은 시대에 심리적으로 기대고 의지할 대상이 필요한 것이다.   시 ‘반려울음’은 올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이다. 울음을 반려로 삼고 가겠다는 말인 듯하다. 이쯤 되면 시인이 지닌 내공이나 시적 중력이 만만치 않음을 알 수 있다. 울음도 짝이 되고 동무가 될 수 있다면 내칠 이유가 없다. 인생을 울리는 울음이나 웃게 하는 웃음이나 동무로 삼고 보면 마음을 담아내는 감정의 다름일 뿐이다. 울음과 웃음이 불행이나 행복의 차원을 넘어선다. 시인의 정서적 담력이 남달라 보인다.   ‘반려고통’ ‘반려상처’ 뭐 이런 말들도 나올법하다. 어떤 환경에서도 마음의 윤택을 누리며 살아가는 고수들이란 누구라도 친구로 삼을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울음을 꺼내 해학의 옷을 입힐 줄 아는 자들이다. 아무리 두려운 적수라도 친구가 되고 나면 내 편이 된다. 울음도 내 편이 되고 보면 예쁜 구석이 많이 보이고 한계상황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이정표의 역할을 해주지 않을까. 조성자 / 시인시로 읽는 삶 어휘 의미 의미 확장 울음과 웃음 사전적 의미

2022-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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